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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은 특별한 이벤트가 열리지 않는 한 한적하다는 말이 썩 눌어붙기 좋은 라이브 하우스였다. 한적하고, 느긋하며, 여유로운. 가게 한구석에는 옅은 쥐색의 먼지가 쌓이다 못해 춤을 추듯 흩날리는 것도 같지만, 어쨌거나 가게에 손님이 없다는 건 일하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반대로 감사한 일에 가까웠다. 돈도 얼마 주지 않는 데다 식사도 빈약하기 짝이 없는데 일까지 바빴더라면 아마 진작에 때려치우고도 남았을 테니까. 한가한 가게이기 때문에 적당히 게으름도 피우고 소소한 권력 남용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이벤트가 있었던 만큼 조금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다들 돌아가고 난 시점에는 꼭 지금처럼―

 

 

“여기에 있었나.”

 

“으왁!?”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고개를 돌리니 퍽 한심하다는 눈을 한 단테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기척도 없이 들어온 사람이 그런 표정을 지을 입장은 아니지 않나? 아연한 기색을 가득 담아 노려본들 단테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며 별다른 행동을 추가로 취하지는 않았다. 그저, 다가오는 걸음에 속도를 더할 뿐.

 

 

“이런 공간을 탈의실로 쓸 줄은.”

 

“티끌만 한 월급 받고 일하는데 이 정도 권력 남용은 해줘야 수지가 맞는 게 당연하지. 것보다 옷 갈아입는 중이라는 거 알았으면 비켜주든가!”

 

 

이미 볼 거 다 본 사이에 이러는 것도 웃기지만. 개인적인 공간인 것마냥 사용하던 텅 빈 연습실에 억울함을 토로하는 목소리만이 들어찼다. 민망하다는 이유 따위가 아닌 거리낄 것 하나 없다는 듯 뻔뻔하게 들이닥치는 태도가 못마땅하다는 이유를 들어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고 만다. 물론 단테가 이런 반응에 눈 하나 깜짝할 위인이 되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다. 그저 울컥 솟는 감정을 연인 앞에서 있는 그대로 토해낸다는 의의만이 존재하는 음성이었다.

대답 대신 손길이 닿을 거리까지 성큼 다가온 단테의 그림자는 본래부터 하나였던 것마냥 내 그림자를 집어삼킨다. 어쩔 수 없지. 엷은 한숨과 함께 셔츠의 단추를 풀기 위해 올린 손에서 힘을 풀었다. 제일 먼저 벗겨져 나간 자켓만이 홀로 외로이 마룻바닥에 널브러진 채다. 고작 몇 시간 전에 손수 대걸레로 문질러 닦은 바닥이었다.

 

 

“아~…… 이제 몰라. 다음부터 마스터 장단에 맞춰주나 봐라.”

 

“당연한 반응이군. 네가 그런 옷차림을 하는 일은 드무니 말이다.”

 

 

고생했다, 히마와리. 연인의 얼굴 즈음이야 충분히 가릴 법한 크기의 거친 손이 머리 위에 얹힌다. 그의 성정만큼이나 불규칙한 방향으로 문지르는 손길에 단정히 묶어둔 머리카락의 흐트러지는 감촉이 생생했다. 뭐 어때, 어차피 이제 막 풀 생각이었는걸. 머리칼을 고정시키던 검은 리본을 풀어내자 그대로 추락한 천이 두 개의 그림자 속에 녹았다.

 

답지 않게 묶어 올린 머리는 에덴의 일일 이벤트가 지나간 흔적이었다. 오너인 마스터가 갑자기 어디서 무슨 소릴 듣고 온 건지, 참여하는 밴드맨 전원이 메이드 혹은 집사 컨셉을 잡고 무대에 오르는 이벤트를 구상한 것이었다. 지켜볼 뿐인 입장이었다면 마냥 즐겁기만 했을 텐데. 가게의 스탭인 나 역시 컨셉을 맞추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며 여러 사이즈와 디자인의 의상을 들이밀던 것이 당장 오늘 오전, 출근하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메이드복은 움직이기 불편하니까, 라는 이유를 들어 집사복을 집어 들었던가. 평소에는 입지도 않는 셔츠며 조끼, 자켓까지 풀로 챙겨 입은 후에야 마스터에게서 오케이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단추를 목 끝까지 채워 올린 셔츠를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입고 버티는 것도 그랬지만, 복장에 어울리게끔 머리를 단정히 묶겠답시고 숱 많은 머리칼을 정리하는 것 역시 만만찮은 일이었다. 혼자서 끙끙거리다 결국 치장에 일가견이 있는 밴드맨들에게 맡겨버렸을 정도로.

 

 

“그래도 마스터 말마따나 구색은 갖춰야겠다 싶어서, 나름 열심히 하고 싶었는데.”

 

“호오, 미련이 남는 일이라도 있었나?”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 덕분에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을 할 수 없었다는 점?”

 

 

오늘만큼은 모든 손님에게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라던 마스터의 언질도 단테의 썩 마뜩잖다는 눈치에는 닳아버리는 법이었다. 찔리라는 듯 일부러 문장 끝을 올려 의문형으로 끝맺었건만 돌아오는 건 썩 만족스러운 색을 띤 입꼬리다. 꼭 자신이 그렇게 한 것은 당연하며 그 결과 역시 마땅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표정. 물론 당신이 본인의 행동을 번복할 사람은 못 된다는 건 알았지만, 아는 것을 확답으로써 돌려받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오래도록 꽁하니 머금어봤자 좋을 게 없는 불만을 털어내듯 두어 개를 미리 풀어 젖힌 셔츠의 깃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하얀 셔츠에 가려져 있던 리본이 손가락에 스친다. 머리를 고정시킨 것과 꼭 닮은, 검은 리본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애들이 나한테 목에 약 꼭 바르고 자라고 걱정해준 거 알아?”

 

“목?”

 

“그…… 단테가 남긴 거. 그거 내가 손톱으로 잘못 긁어서 생긴 거라고 말해버렸거든.”

 

 

초커처럼 목덜미를 감싼 리본이 묘한 광택과 함께 손가락 틈 사이를 미끄러진다. 평소에도 초커를 거는 탓에 목덜미를 오롯이 드러내는 일은 드물었지만, 그 이유가 지금의 리본처럼 붉은 자욱을 감싸기 위함은 아니었다. 이벤트를 시작하기 전, 복장을 갖춰 입은 연인을 짤막하게 불러 세운 단테가 선사한 독점의 증거. 단추를 끝까지 채우면 셔츠 옷깃에 아슬하게 가리곤 하는 검은 광택의 리본 너머, 불긋한 자욱이 선명하다는 건 아마 두 사람만이 알았으리라. 울혈을 남긴 당사자와, 울혈이 새겨진 사람 단둘만이.

 

 

“소유물에는 표식을 새겨두는 것이 주인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지 않나.”

 

“내가 단테 소유라고 하면, 단테도 내 소유가 된다는 거 알고 하는 말이지?”

 

 

제 말에 이어진 문장은 들은 체도 하지 않은 단테가 대답 없이 손을 뻗어온다. 정말이지 제멋대로인 연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대로 손목을 거머쥐는 동작에, 한참이나 잊고 있던 따끔한 감각이 피부를 찌르듯 파고든다. 쯧, 짧고도 확실한 혀 차는 소리는 분명 미약한 통증에 움찔해버린 연인의 반응을 알아차린 탓임이 분명했다.

집사 하면 차를 우리는 이벤트를 빼놓을 수 없다고 마스터가 말했던가. 분하게도, 나 역시 그 말에 현혹되듯 동감해 서툴게나마 티포트를 쥐고 말았던 것이다. 하얀 열기를 내뿜는 주둥이에 겁도 없이 팔을 뻗었다가 가벼운 화상을 입는 결말만이 남아, 그대로 티포트를 빼앗기고 말았지만. 곧장 찬물로 식히고 약을 바르긴 했으나 역시 돌아가면 제대로 살펴봐야겠다 싶은 미련만이 입가에 남아 씁쓰레한 뒷맛을 흩뿌린다.

 

 

“이 몸은 내 것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게 아니라면, 목덜미로는 모자라다는 뜻의 표출이었나?”

 

“그, 그래도 집사라고 하면 왠지 평소보다 멋부리고 싶잖아!”

 

“네 몸보다 멋을 우선시하겠다면야.”

 

 

말을 마친 입술로 들이켜는 숨이 유독 깊다. 덧붙이고 싶은 말을 애써 삼킨 것처럼. 아마 더 말을 이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안 따름이리라. 내가 당신의 소유이며 동시에 당신이 내 소유라는 사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종속된 관계임은 우리 둘만이 공유하는 절대적인 대전제였으니까. 굳이 길게 이야기한들 아는 사실을 무료하게 되새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안 탓이다.

그런 단테에게 어리광을 부리듯 모든 무게를 오롯이 맡기는 것처럼 몸을 기대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제게 기대오는 체온을 가만히 끌어당기는 손길이 뜨거웠다. 앞으로 조심하겠다는 말 대신 쥐여 준 당신의 것이 지닌 무게와, 이대로 잠들고 싶을 정도로 포근한 품이 포개진다. 옷, 마저 갈아입어야 하는데.

 

 

“……갑자기 귀찮아졌어.”

 

“뭐가 말이냐.”

 

“옷 갈아입는 거. 단테가 대신 갈아입혀줄래?”

 

 

중얼거리듯 튀어나간 말에 어이없다는 기색의 숨소리가 웃음처럼 새었다. 당신의 품을 그대로 떼어낸 듯한 온기의 손길이 목뒤의 리본을 풀어내는 감각이 생경해 몸을 잘게 떨면, 즐겁다는 듯 어깨를 둥글게 쓸어내리는 손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간지러운 촉감의 끝자락에서, 등을 온전히 덮은 머리칼의 틈 사이로 리본이 하릴없이 지고 만 꽃처럼 고개를 떨구는 소리가 났다.

 

 

“크큭, 이렇게 나태한 사용인을 둔 기억은 없다만.”

 

“이런 집사라도 곁에 둘 주인님이잖아?”

 

 

주인의 마음을 떠보듯 어리광을 부리는 사용인이 이 세상의 또 어디에 있을까. 가진 거라곤 주인에게 사랑받는다는 확신뿐인 오만한 사용인도, 기가 찬 표정을 덧그리면서도 끝끝내 사용인의 뜻에 걸음을 맞출 고매한 주인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서로만이 유일하리라는 오만을 두르고서, 지독히도 다정한 주인의 목덜미에 숨결을 흘렸다. 종일 검은 리본을 장식한 채 주인의 손에 해방되기만을 고대한 붉디붉은 선물을 되돌려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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