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가 흐르는 비단결같은 자줏빛 머리칼, 고운 피부, 고혹적인 미모. 소메이 가의 외동딸인 요시노는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아가씨였다. 요시노의 전속 메이드로 일하고 있는 사야카는 요시노에게 약혼자가 생겼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았다. 그녀는 요시노에게 약혼자가 생기리란 것쯤 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오래 전부터 그 부분에 대해 마음을 다잡아왔다.
하지만 요시노의 약혼자가 누구인지를 들었을 때, 사야카는 정말 심장이 덜컥 내려 앉을 뻔했다. 상대는 미야마 가의 키리시마라는 남자, 그 역시 외동 아들이었다. 사야카는 여기까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요시노에게 걸 맞는 훌륭한 가문의 사람이었으니까. 문제는 그 망할 남자는 온갖 여자들과 놀아나는 쓰레기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성격도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사이코같은 남자였다. 사야카는 그가 여자들과 놀아난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사이코라는 점에서 열불이 터졌다. 아무리 가문끼리의 결합이라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 게 아닌가 싶었다.
"사야~."
"네, 아가씨~!"
요시노가 부르는 소리에 사야카는 방실방실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키리시마랑 사업 얘기를 꽤 할 것 같아서 꽤 늦을 것 같으니까 저번처럼 마중나와 있지 않아도 돼. 아니, 마중 나오지 말아. 괜히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해.”
벌써 이름으로 그 남자를 부르는 건가. 사야카는 더더욱 그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 달려가서 목을 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그녀는 입가를 쭈욱 끌어 올렸다.
“감기 같은 거 잘 안 걸리고, 걸려도 금방 낫는 걸요~.”
“그래도 걱정되니까 안 돼.”
“으음, 알았어요. 아가씨가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죠, 뭐.”
사야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중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 그녀였지만 실제로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 사실을 요시노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은 말을 뱉고 보는 것이었다.
“그래. 그럼 다녀올게, 사야.”
“다녀오세요, 아가씨~.”
사야카는 요시노가 타고 있는 차를 향해 손을 휘휘 흔들며 방긋거리다가 그녀가 타고 있던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표정을 싹 바꿔 무시무시한 얼굴로 변했다.
“어디서 만난다고 했더라. 키리시마 쪽에서 운영하는 카페였던가.”
그녀는 어떤 연장을 챙길까 하는 고민을 하며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요시노가 그런 쓰레기같은 놈과 결혼하는 꼴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가문끼리 척을 지더라도 키리시마와 그녀를 떨어뜨려 놓을 생각이었다. 차라리 사야카의 입장에서는 척을 져서 다시는 그 가문과 엮이지 않는 편이 좋기는 했다. 그럼 요시노가 키리시마와 결혼할 일이 없어지니까 말이다. 사야카는 키리시마가 장악하고 있는 구역에서 깽판을 칠까, 그를 직접 노릴까 하는 무서운 고민을 했다.
“…아니지, 아냐.”
가문끼리 척을 지면 그걸 풀지 않는 이상은 계속 적대적인 관계를 지속하게 되니 그러다 요시노에게 불똥이라도 튀면 곤란했다. 사야카는 이대로 결혼을 하는 수 밖에는 없다는 생각에 손톱을 까득거렸다. 어쩔 수 없지. 결혼한 다음에 사고사로 죽이던 독살을 하던 하자. 그녀는 어쨌든 키리시마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버리진 않았다. 그저 좀 뒤로 미룰 뿐이었다.
사야카는 그래도 나름 도달한 결론에 즐거운 마음으로 요시노가 오기를 기다렸다. 차를 타고 안전하게 올 테지만 만에 하나라도 누군가 달려들면 요시노를 지킬 생각으로 들고 나온 식칼을 옆에 고이 놔두었다. 이윽고 주변이 온통 어둠으로 휩싸인 밤이 되자 요시노가 돌아왔다. 요시노는 역시 이번에도 나와있는 사야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가 들어가 있으라 안 했나. 또 요로코롬 나와있으면 우짜는 기가.”
“헤헤.”
“에휴, 일단 안으로 퍼뜩 들어가자.”
“네~.”
사야카는 앞서가는 요시노를 쫄래쫄래 뒤따라갔다. 요시노를 뒤따르는 그녀의 손에는 식칼이 들려 있었는데, 요시노에겐 보이지 않게끔 교묘하게 가린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