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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하자!_쿠루스 마코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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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이건 또 무슨 명화일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놀릴 것까진 없잖아요?”

 

 

키리가쿠레의 화법을 두 글자 단어로 대충 이미지화한다면, 이 정도가 될 것이다. 한색, 그리고 고풍. 허리 아래까지 길게 흘러내린 가죽제 롱코트의 자락은 격자무늬 카펫과, 어쿠스틱 버전의 헤븐리 브리즈가 울려퍼지는 카페와는 상당한 이질적 분위기를 풍겼다. 풍길 것이다. 그걸 걸친 것이 키리가쿠레 자쿠로가 아니었다면. 다소곳이 다리를 모으고 테이블을 가볍게 검지손가락으로 똑똑 두들기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이 풍경에 녹아들 듯이 우아해 쿠루스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낮게 쉬었다. 하얀 장갑을 낀 손이 목 언저리에 테디베어의 장식처럼 달린 리본을 매만졌다. 비뚜름하지는... 않겠지.

 

 

“아가씨, 저택에 들어오시기 전에 기별이라도 하셨으면 좋았지 않습니까.”

“놀랍네. 진짜였구나, 한 번도 이런 곳엘 와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아까 입구에서 레이 군이랑 코가네이도 다녀오셨습니까, 아가씨, 라고 인사하는 걸 보면 말야. 하지만 기별이라면, 진작에 했는걸.”

“네?”

“... 그저께 같이 기타 점검하러 가보자던 연락도 못 받았다고 그랬지? 휴대폰, 슬슬 맛이 가기 시작한 거 아니야?”

 

 

그러고보니 휴대폰 알림이 어쩐지 예전같지가 않기는 했었지만, 휴대폰의 사용도 자체를 값비싼 시계 정도로 사용하는 일이 훨씬 더 잦은 쿠루스는 좀처럼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가장 자주 연락을 하고, 그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그녀조차도 연락의 빈도가 높다고 말할 수는 없었던 탓이다. 밴드와 업무의 양립을 해내는 그녀의 야무진 점은 쿠루스가 오래도록, 그리고 앞으로도 장점으로 꼽을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차림이 차림이다보니 오늘만큼은 단점처럼 느껴지는 일을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조금 많이....... .

 

 

민망하다.

 

 

이래서 쿄 씨가 저를 불렀나보군요. 잘게 한숨을 흘리며 쿠루스는 타카라 쪽을 흘낏거렸다. 오시리스 멤버들이 골든위크를 맞은 기념으로 단 이틀간 서비스하는 집사 테마 카페. 반대쪽 테이블에서 홍차를 하나하나 따라주는 타카라의 모습은 평소의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열심히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좋아하는 음식이 차 종류이기에,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차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접객을 받는 여성은, 쿄의 체구 상 다소 크게 느껴지는 연미복조차 귀엽다는 듯이 그 말만을 수백번은 태엽을 감은 오르골처럼 중얼거리며 얼굴을 붉히고 있다. 차라리 저런 타입의 손님이었으면 편했을까? 쿠루스는 짧게 숨을 내쉬며 오른손에 잘 갈무리해 쥐고 있던 메뉴판을 그녀에게 내밀어보였다. 곧장, 그것을 받아들던 키리가쿠레가 풋, 하고 실소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혹여 문제 될 게 있느냐는 질문을 하려뎐 쿠루스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리고, 키리가쿠레의 손에 거꾸로 들린 메뉴판을 그녀가 바로 펼쳐보기 쉽도록 180도로 돌려 다시 쥐여주었다.

 

 

“잘 어울리네.”

“아가씨,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실수. 그것마저도 너답네.”

“.......”

“농담이야.”

“농담을 진담처럼 하는 나쁜 버릇은 고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날 때부터 표정이 좀 굳어있는 걸 어떡하겠어, 이것만은 포기도록 해. 뭐, 가장 어울리는 건... 따로 있지만.”

 

 

기분 좋은걸.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집사의 첫 시중을 받게 되고. 그리 뇌까리는 키리가쿠레의, 검은 매니큐어에 깔끔히 정돈된 손톱 끝이 메뉴판 한 구석을 톡톡 두드린다.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후식으로는 생과일 파르페, 그리고 원두커피. 다른 것은 몰라도 마지막의 것은, 유달리 수다스러워지는 집사를 기대하며 일부러 준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그녀의 선택이, 쿠루스는 싫지 않다. 커피를 좋게도 싫게도 생각하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을 생각하며 커피를 골라주는 일은, 생각보다 꽤 기분이 괜찮은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 준비된 원두 가운데에는 컨디션을 고려하는 키리가쿠레의 성정을 흠뻑 매료시킬만한 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가. 아, 물론... 어느 정도 기름칠을 덧입힌 듯한 멘트는 필수겠지만. 쿠루스는 타카라의 포엠을 되도록 많이 떠올리려 애를 쓰며 그 사이에서 단어를 고르고 또 골랐다.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할 줄 아는 아가씨께는 샤리에 커피가 적합할 것 같네요. 아가씨의 밤을 고루하고 겨울의 것처럼 길게 만들법한 카페인이 배제되어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오늘 내드릴 건 거의 끄트머리에서만 맡을 수 있는 달큰한 향기가 매력적이라, 분명 마음에 들어하시겠죠.”

“푸핫, 마코토, 너 지금 쿄 군같이 말하고 있는거 알아?”

“감미로운 말소리를 아가씨들은 좋아하니까요.”

“그 아가씨 중 하나가 꽤 제멋대로라서, 평소처럼 대하라고 하면 어떡할거야?”

“정중히 사양한다고 말씀드리죠.”

 

 

이런 연미복은, 당신이 원한다면 둘만의 시간동안 질리지도 않고 입어줄 수 있으니. 이 말이 서로에게 서로가 유일인 파트너들만이 즐기는 증표같은 것임을 쿠루스는 잘 알았다. 그렇기에, 고고하게 옥좌에 앉은 얼음 여왕처럼 턱을 괴고 앉은 키리가쿠레의 앞에서 가슴에 공손히 손을 얹고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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