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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모름지기 사쿠마 리츠, 그도 엄연한 사람인지라 그 법칙은 피해갈 수가 없었다. 인간관계. 그 짤막한 단어를 다시금 곱씹어본다. 자신조차 알 수 없는 감각이 심장부터 스멀스멀 배어 나오는 기분에 입술 새를 비집고 툭,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랬다. 근래 리츠는 정의되지 않는 감정으로 근심하고 있었다. 그것도 다른 게 아닌, 고작 한 명의 하녀 때문에.

 

* * *

 

호감과 반감 사이

 

* * *

 

로아이다 유리. 언제부터 이 가문에서 일해왔는지도 모르겠는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예로부터 대대로 일본을 지켜온 기사 집안으로 유명한 명문가, 사쿠마 가에서 하녀 한 명 정도야 널리고 깔린 것이라지만, 유리는 그중에서도 유달리 퍽 신경 쓰이는 하녀였더란다.

 

이유는?

 

달리 이유랄 게 있었나. 거슬리는 게 그냥 거슬리는 거지. 그래도 뭐, 적당한 구실을 붙여보자면……. 자꾸만 제 숙면을 방해하는 주제에 염치도 없이 당당하게 굴어서. 혹은 본인을 향한 악의적인 시선을 깨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 멍청하게 굴어서. 손으로 하나씩 수를 세어보던 리츠는 이내 곧 손가락을 펴고 제 몸을 뒤로 쓰러뜨렸다. 폭신한 침대 시트가 부드럽게 그의 몸을 감싼다. 전신을 휘감는 이불과 함께 다시금 무언가의 생각들이 저에게로 밀려들기 시작한다. 머리 위로 떠오른 해사한 미소 하나. 생각은 제 옆에 걸터앉은 소꿉친구에 의해 길게 이어졌다.

 

의외네. 네가 그렇게 피하는 건 너희 형 말고는 없을 줄 알았어.

 

…그거랑은 조금 달라. 늘어지는 목소리에 불평이 섞여들어 간다. 끔뻑, 끔뻑. 리츠는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선 당장 자신의 주위를 떠도는 감정에 대한 정의가 필요했다. 사쿠마 레이도, 로아이다 유리도, 별로 마주하기 싫다는 점에서는 똑같았지만, 자신을 외면하고 약속을 어겨 반감을 산 레이에 비해 유리의 경우엔 특별히 자신에게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다던가 하는 특정 사건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그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여자 하나가 뭐라고 자신이 이렇게 머리를 굴리는 건지, 상념에 잠긴 이런 상황 자체도 리츠는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기우겠지. 그 녀석, 가만 보면 사고도 꽤 많이 치던데, 그 때문일 수도 있고.

 

가벼운 어조로 던져진 음성에 리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라는 하녀는 마오의 설명 그대로, 혹은 그 이상이었으니 당최 어떻게 메이드가 된 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사엔 쥐약이었다. 빨래를 널다가도 발을 헛디뎌 재세탁을 감행해야 하는 일은 귀여운 정도고, 리츠의 달콤한 낮잠 시간은 접시와 함께 깨지기 일쑤. 그중에서도 가장 환장스러운 건……. 무언가의 잿더미를 떠올린 리츠는 작게 몸을 진저리쳤다. 내 미적 감각으로도 그건 절대 이해할 수가 없어. 음식계의 수치야. 불만을 쏟아내는 그를 향해 그러는 네가 만드는 디저트도 별반 다르지는……. 하는 반박의 문장이 쏟아졌지만 그런 건 별로 귀담아듣지 말도록 하자. 여하튼 리츠는 그런 녀석이 어떻게 아직도 이 집안에 하녀로서 붙어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진심으로.

 

아하하. 뭐, 사쿠마 씨의 마음에 들기라도 했나 보지. 너무 뭐라고 하진 마. 그래도 그 애는 널 꽤 좋아하고 있는 모양이던데. 그렇게 자꾸 벽만 치니까 그 사쿠마 리츠의 인간관계라고 할 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라고~. 알아들어, 리츠~?

 

순 잔소리. 내 인간관계는 마~군이면 충분하다고, 리츠가 작게 툴툴거렸다. 이불과 함께 널브러진 몸을 가볍게 한 번 뒤집는다. 그렇다면야 그런 하등 쓸모없는 하인 따위 무시해 버리면 그만일 텐데도, 유리는 퍽 제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뱅글뱅글 맴돌기만 했더란다. 기왕에 주제로 떠오른 만큼, 리츠는 그녀에 대해 품었던 생각들을 하나둘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차라리 누군가 있는 자리에서 털어놓아 본다면, 무언가의 쓸모 있는 해답 하나쯤은 얻어갈 수 있을 성 싶었다.

생각을 정리할 의욕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으니, 당연히 입술 새로 튀어나가는 말들은 두서없기 짝이 없었다. 그 녀석이 유독 나를 좋아한다는 건 알아. 안 그래도 일을 못 하는 녀석이 자꾸 나에게 관심을 두니까, 다른 사용인들에게 괴롭힘을 받는다는 것도. 그런데 그 녀석 싫은 내색을 전혀 안 하더라고. 어느 날은 대놓고 물벼락을 맞는 걸 봤었는데도, 그 날 저녁에 아무렇지도 않게 내 시중을 들러 왔어. 대충 사용인 험담을 하겠거니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더라. 그런 것들도 친구라고, 멍청하게……. 뭐, 그 녀석들은 내 선에서 알아서 처리하긴 했는데. 그래서 요즘엔 잠잠한 것 같아.

…그런데, 왜 그렇게 봐? 마~군.

 

아하하, 아냐. 그냥. 리츠도 사실은 그 녀석이 싫은 건 아니구나~, 싶어서.

 

그 한 마디에 멋대로 떠들던 입술이 앙 다물린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묻는 말은 내뱉어지지 않았다. 의문을 가득 띄운 낯이 마오에게로 향한다. 제 눈동자에 담긴 그는 웃고 있었다. 제 고민이 퍽 우습다는 듯이.

 

솔직히 네 그런 반응, 엄~청 의외여서 긴가민가했거든. 뭐, 너무 피하기만 하지 말라고. 리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귀에 꽂히는 말에 코웃음을 쳤더란다. 주인과 시종이 친구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베개를 끌어안은 채 뚱한 표정을 지어내는 리츠는 마오의 말을 한 귀로 흘려보냈다. 달리 지금의 관계가 변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순 영양가 없는 대화뿐. 제 머리를 한 번 헤집어놓은 리츠는 이내 이 무저갱같은 대화의 굴레에 마침표를 찍었다. 어째 정리를 시도하면 시도할수록 두통이 몰려오는 것만 같은 느낌에 썩 기분이 좋지 않다. 됐어, 잘래. 부루퉁한 얼굴로 리츠가 이불을 끌어당겼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잊힐 감정에 괜한 소모전을 하기가 싫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기색이 역력한 마오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 목소리를 자장가로 삼기라도 할까. 특별한 대꾸도 않고서 리츠는 천천히 눈꺼풀을 아래로 내렸다.

그렇게 한 명의 하녀를 주제로 한 혼자만의 열띤 토론회는 막을 내렸다. 나른하게 잠에 빠져든 리츠는 아마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겠지.

 

훗날에 그가 그렇게 거슬려 하던 로아이다 유리를 제 권속처럼 두리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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