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아카오스기씨, 오늘은 학교에서 카스미가…….”
“……네, 아가씨.”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예요.
이야기는, 제가 이치가야 아가씨를 처음 만났던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답니다. 저는 고아였는데 말하자면 제가 태어날 때부터 버려져서 보육원에 맡겨졌대요. 보육원에서 공부도 배우고 이것저것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걸 배우고 나서, 독립한 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보육원에서 받은 돈과 식량이 떨어져 갈 때쯤 저는 기적적으로 그걸 발견했답니다. 바로, 어떤 한 집에서 메이드를 구하고 있다는 거였죠. 빨래, 청소, 요리, 어느 것도 빠지지 않는 저에게 너무나 안성맞춤인 곳이라 생각해서 즉시 그곳으로 향했답니다.
이치가야 주인님의 집은 매우 컸어요. 집을 들어가니 수많은 분재가 보였는데 이것들은 모두 주인님이 관리하시는 거겠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구경하다가 저는 주인님의 딸이라는 이치가야 아가씨를 소개받았어요. 저보다 한 살 어리다는 ‘이치가야 아리사’라고 하는 아가씨는 금발의 양 갈래가 참 잘 어울리셨답니다. 그게 제 첫인상이었어요. 저는 청소나 빨래, 요리보다는 이치가야 아가씨의 말동무가 되어 주는 게 제가 맡은 주요한 일이었어요. 아가씨는 학교에 잘 가지 않아서 주인님이 말동무가 필요했다고 생각하셨대요. 청소나 요리, 빨래보다 분명 더 재밌을 거로 생각해서 저는 기꺼이 하겠다고 말했답니다.
아가씨는 정말 귀여우셨지만 까칠한 부분이 있어서 조금 힘들었어요. 저 같은 건 딱히 필요 없다고 말하던걸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제가 말을 들어드릴 때마다 아가씨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에 빠졌답니다.
하루는 제가 못다 한 청소와 빨래를 끝내고 아가씨 방에 갔을 때 아가씨가 안 계셔서 집안 곳곳을 찾아다니고 있었을 때였어요. 그러던 중, 저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듯한 이치가야 아가씨를 발견했는데 이게 웬걸. 아가씨는 제가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 구경했던 그 분재 중 하나에게 말을 걸면서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을 물을 주고 있었답니다.
“예쁜 토네가와, 많이 먹고 쑥쑥 크자-.”
왠지 모르게 질투가 났어요. 저한텐 저 정도로 웃어준 적 없었는데. 슬며시 다가가 아가씨의 이름을 불러줬답니다.
“이치가야 아가씨-?”
이치가야 아가씨는 정말 들키면 안 될 것을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라셨답니다.
“……아, 아카오스기씨-!”
아가씨의 놀라는 모습이 귀여워서 미소 지은 채 되물었답니다.
“왜 그러시나요, 아가씨?”
이치가야 아가씨는 들고 있던 물뿌리개를 고쳐 잡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여셨어요.
“……비, 비밀로 해줘. 안 본 거로 해줘.”
얼굴을 붉히며 말씀하시는 아가씨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귀엽게 느껴졌어요. 저는 그렇겠다고 답했어요.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저와 아가씨는 조금 더 친해졌답니다.
그로부터 1년 뒤. 이치가야 아가씨는 Poppin'Party라는 밴드의 어엿한 키보드 담당이 되었어요. 종종 멤버들을 데려와 집에서 연습을 같이하곤 했는데 키보드를 연주하는 아가씨의 모습은 평소에 보는 아가씨의 모습보다 훨씬 더 즐거워 보이더라구요. 아가씨가 밴드의 멤버들과 연습을 하는 동안은 제 쉬는 시간이랍니다. 주인님께서 서재의 책들을 읽어도 좋다고 허락하셨기 때문에 아가씨가 연습하는 동안엔 저는 서재에 가서 책을 읽는답니다. 보육원에 있을 때도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저는 그걸 허락해주신 주인님께 매우 감사하고 있어요. 아가씨의 밴드 연습 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삼아 책을 읽는 이 시간도 너무나 즐거워요. 아가씨의 밴드 연습이 끝나면 으레 그날 연습했던 곡을 들려주곤 해요. 아가씨의 키보드 연주는 제가 느끼기엔 다른 밴드의 키보드보다 최고인 것 같아요. 아가씨께 이런 말을 하면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하셨어요. 저 또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무척이나 좋아요.
그렇게 이치가야 아가씨와 이런저런 추억을 쌓아가다 이치가야 아가씨가 졸업할 때가 다가왔어요. 저는 요즘 아가씨께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있어요. 단순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아가씨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더 빨리 뛰는 것 같고, 아가씨가 안 계실 땐 아가씨가 더 생각나고 그러더라구요. 설마 이 감정이…… 아니, 아닐 거예요. 저는 아가씨께 이런 감정을 가져선 안 돼요. 일개 하인인 제가 어떻게……. 저는 이 감정을 지우려 애썼어요. 아가씨는 저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어떻게 감히 이런 감정을 가져요. 하지만 아가씨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 결심이 항상 무너져요. 인제 그만, 이 집을 떠나야 할 때가 온 걸까요. 그래요. 그런 건가 봐요. 이제 아가씨도 저 말고도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기셨으니까요. 이제 더는 제가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도 없네요. 저는 이 집을 떠나야겠다 결심을 했어요. 그런데 요즘 아가씨의 표정이 어두워요.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대충 얼버무리기 일쑤였어요.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한데. 평소엔 저런 표정을 안 지으셨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왜 아가씨가 요즘 그런 표정이었는지 알게 됐어요. 제가 이 집을 그만 떠나야겠다고 말하고, 떠나려고 준비하려던 순간. 이치가야 주인님으로부터 아가씨의 혼담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더라구요. 마침 떠나려 했던 저에게 그 소식은 정말 슬프지만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쁘면서도 눈물이 나려 하네요. 제 주제에 무슨 눈물일까요. 눈물이 흐르려는 눈을 바로잡고 아가씨께도 제 작별과 축하를 전하려 아가씨의 방으로 향했어요.
“아가씨-. 들으셨나요……?”
“…….”
어찌된 일인지 이치가야 아가씨는 더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변했어요.
“아, 그리고 축하드려…….”
“……아카오스기씨-.”
제 말을 끊은 이치가야 아가씨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어요.
“이상해. 난 사실 그 사람이랑 결혼한다 해도 진짜 아무 상관 없는데, 막상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왜 아프지? 난 아카오스기씨랑…… 떨어지기 싫어. 나, 왜 그러는 걸까?”
울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는 이치가야 아가씨. 설마, 설마요. 이치가야 아가씨가 저를?
“아가씨…… 설마…….”
“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난 아카오스기씨랑 같이 계속 있고 싶어. ……평생.”
이 기회,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네요.
“아가씨.”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숙인 이치가야 아가씨의 고개를 들어 올려 이치가야 아가씨의 눈동자 속에 비치는 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어요.
“평생 이치가야 아가씨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아해요, 이치가야 아가씨. 제가, 이치가야 아가씨의 애인이 되어도, 괜찮을까요?”
말해버렸어요. 부디, 이치가야 아가씨도 같은 마음이길.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저를 안았어요. 아가씨의 심장 소리가 대답을 대신한다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저희는 그렇게, 연인이 되었답니다. 밖에서 보면 아가씨의 메이드, 안에서는 아가씨의 연인인, 그런 사이가 되었다구요.
사랑해요. 귀여운 양 갈래가 잘 어울리는, 이치가야 아가씨.